들려오는 매미소리가 갈수록 커가며 고막을 따끔거리게 찌른다. 준영이 앉은 벤치 옆으로는 칡덩쿨이 무성히 자라, 벤치의 처마를 푸릇하게 뒤덮었다. 한창 자란 아카시아나무의 나뭇잎들 사이로 스미는 햇빛이 부서지며 준영의 머리맡과 읽고있던 책속의 문장 언저리에 녹아내렸다. 하얀종이에 햇살이 비추자, 준영은 잠시 책을 덮어두었다. 덥지도 않고 시리지도 않은 늦여름...
포기했다. ...아니, 포기했다기 보다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정도다. 나는 내 나름대로 여러 방법들을 써가며, 어찌보면 구슬픈 울음소리 처럼 느껴질 정도로 부르짖으며 아우성 쳤다. 내 딴에는 분명 그랬을 터다. 내가 필요없다 말한 것들은 정녕 없어 마땅한 것들인가. 나는 거듭 생각하고 그 끝이 정말 필요없는것을 그리 말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응? 보여준다니?” “뭘 빼고그래? 아까 해봤잖아.”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말한 그녀가 손을 쓱 굴리자 한번 신선한 바람이 그들곁을 지나며 이번에는 아론의 본가. 즉 아론의 부모님의 저택 입구에 와 있었다. “이거 마음대로 할 수 있는거였어?” “못할께 뭐가있어? 내 머릿속인데.” “그럼 왜 지금까지 안했던 거야?” “아 그건… 설명이 끝나면 가르쳐줄께...
“……여기는….” 거대한 몸. 빛을 가리며 등장한 그가 신비한 오라를 풍겼다. ‘신…?’ 아마 그는 지금 자신을 구원 하러 온 것일 거라고 아론은 생각했다. 조금 뒤,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아니, 심리적인 압박이라기 보다는… 그래. 무언가 위에서 짓누르는 듯한 느낌. 누군가 자신의 몸에 기대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무게를 전부 싣고. 누구인진...
“이름….” “이름?” “응. 네 이름이 궁금해서.” “아, 그러고 보니까 우리 아직 통명성도 안했네.” “응. 아직.” “아 그랬었구나… 아직 이름도 모르는 사이였구나….” “……” “음~ 장난이야, 나도 조만간 물어보려고 했었어.” “…………” “그런표정 짓지 마, 신경쓰여서 물어보려고 했어, 진짜야.” “…그래. 뭐, 아무래도 상관 없겠지.” “아… ...
시계바늘은 술래잡기를 끝낼 생각이 없어보였고, 아론은 사실 조금 남아돌 만큼, 남은 10시간을 부족함 없이 사용했다. 이미 준비를 마친 그에게는 이미 10시간은 조금 많은 시간이었다. 이제 아론은 자신의 인생을 끝내러,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는 야경을 확실하게 눈에 담으려고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이런 늦은 시간에 병원 옥상에 올라올 사람은 없으니, 아론은...
옥상에서 몸을 던지려고 하던 아론의 손을 누군가 잡아주었다. “누구야?” 아론이 돌아보지도 않고서 관심없다는 듯 물었다. “네 생명의 은인이지.” 여자가 답했다. “그런거 바라지도 않았어. 도와주려는건 고맙지만 그냥 놔주지 않을래?” “싫어.” “그리고 난 딱히 널 구하려고 한거 아닌데? 저 밑에 있는 사람들은 대낮부터 무슨 죄야. 하물며 떨어지다가 지나가...
-매일밤 잠들 때 마다 아론의 꿈에 나오는 남자아이의 이야기는, 이 공간에 있던 반년간 이만큼이나 진행되어 있었다. 그는 흐릿하게나마 기억을 되찾은 것이다. 아직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만큼의 기억까지는 아니지만, 영영 기억할 수 없을 것 같던 과거를 머리 한구석에서 끄집어 내는것에 성공했다. 비록 그로부터 더 진행되는 이야기는 없었고, 병원 옥상에서 본...
초아가 방문을 닫아버린 그날, 내 눈은 집 앞 강에 비친 달빛을 볼 수 없었다. 도저히 마음편하게 그런경치를 상상할 여유가 없었다. 다음날에는 초아에게 꼭 사과하겠다고 다짐하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었다. 일어나자 마자 세수와 양치만 하고 잠옷바람인 채로 초아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것이 별로 매너있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우물쭈물 하다가 또 기회를 놓치...
“넌 죽을 거야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가 무언가를 손으로 매만지며 말했다. 차갑고 비정한 목소리가 내 귓속을 지나서 뇌리에 꽂혔다. 지금 그녀의 손에 닿고 있는 투명한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것 들이 분명히 어떤 형태로든 모습을 바꾸고 있다고. 왜냐하면 그 말을 전부 뱉어버린 그녀는 ...
알람 없이 아침도 찾아오지 않은 이곳에서 그저 본능적으로 오늘도 눈을 떴다. 일층으로 내려와 보니 오랜만에 맡아보는 냄새가 거실안을 채우고 있었다. 이 냄새가 무슨 냄새였는지를 떠올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요리하는 냄새!” 그러고 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는 일 따위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 몇주간 음식을 입에 대보지 ...
“음..”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떴다. ‘부르는 사람?’ 원래 세계로 돌아온건가? 스치는 생각에 흠칫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날 깨운 사람은 다름아닌 초아씨였다. “왜 그렇게 급하게 일어나고 그래? 내가 다 놀랐네. 일어났으면 빨리 나와.” “네? 아.. 네.” “...그래... 존댓말 하지 말라니까...” 철컥- 초아씨가 중얼거리며 방을 나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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